일기

피곤

으햡 2015. 9. 9. 00:50

겨울 나들이를 읽고

나는 겨울 나들이란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가라앉고 차분한 인상을 받았다. 교과서에 그려진 삽화의 여인이 무슨 연유로 겨울에 나들이를 나가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며 읽게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은 첫 번째 아내와 어머니를 이북에 두고 온 남편이 딸의 초상화를 그리며 질투심을 갖게 되고 혼자서 겨울 나들이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황량하고 외로운 겨울 풍경에 고독감은 더욱 깊어지는 와중에 여인숙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나 아들을 잃은 슬픔에 도리질을 치는 노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주머니가 서울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진심으로 걱정 되어 자신이 혼자 떠나올 때 남편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똑같이 아주머니에게 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알아차리게 되어 자신의 내면의 갈등은 해소되고 고부간의 정을 느끼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도입부에서부터 주인공의 온천에 대한 의심에서 엿보이는 어딘가 불편한 심리에서 엄마와 내가 나누던 대화와 닮아있음을 깨닫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 뿐 아니라 질투로 인해 스스로 안 좋은 상황을 상기시키며 허탈감을 느끼는 모습, 온천에서 소년의 눈치를 보며 또다시 떠나는 모습에서 자그마한 일에도 의심을 계속 키워나가는 모습이 꼭 나와 닮게 느껴지고 큰 공감이 되었다.

공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질투가 독사 대가리처럼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해골 같은 가로수와 인적이 드뭇한 얼어붙은 보도’,‘을씨년스러운 도시의 겨울 풍경에 느닷없이 뭉클한 감동을 맛보았다.’ 등의 문장에서 내가 여태 경험해 봤던 상황과 기분들이 피어올라 주인공의 감정에 정말 이입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침울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계속 느낄 수 있었던 와중에 주인공이 여인숙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에 살갑게 챙겨주고 주인공을 생각하는 것, 굽실대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애정에서 나오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는 엄마에 대한 포근함과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정겨움 같은 것이 느껴져서 뭉클해졌다.

전쟁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슬픔의 충격으로 고개를 흔들어대는 노파의 이야기에서 내가 여태 글로나마 읽어 알았던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남은 상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의 참상으로 인한 아픔들을 세월이 흐르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담담히 말해주는 이야기 속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소설의 후반부 “서울을요? 왜요? 하필이면 이 추운 날.” 초반에 주인공의 남편이 주인공에게 했던 대사와 똑 닮은 대사를 보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주인공이 아주머니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말이 남편이 자기에게 했던 말과 닮아있음에 남편이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동안의 내적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점괘를 쳤던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나 역시 혼자서 사사로운 점괘를 재미로 쳤던 상황이 떠올라 아주머니가 어떠한 심정으로 아들을 걱정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와 시어머니 고부간임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맞잡은 손에 주인공이 손을 포개어 볼 때 나 역시 그 위에 손을 포개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파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게 눈앞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아서 노파의 위로가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 같다.

소설 속의 상황이 내 경험과 밀접해 있어서 소설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고 전쟁을 통한 가족들의 아픔과 그것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현대에서 우리가 갈등을 극복해 나갈 때의 방법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소설을 읽고 다시 한 번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